교황, “목숨을 바치는 것”을 시복을 위한 새로운 길로 제정


프란치스코 교황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순교와 영웅적인 덕행에 관한 경우와 구별되는 시복시성 절차의 새로운 경우”로 규정한 교황의 자의교서 「이보다 더 큰 사랑」(마요렘 학 딜렉씨오넴, Maiorem hac dilectionem)이 지난 7월 11일 발표됐다. 교황청립 라테라노 대학 총장 엔리코 달 코볼로 주교는 지난 2016년 6월 2일 “목숨을 바치는 것”에 대한 시복시성성 특별회의를 주관한 바 있다.

“중심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목숨을 바치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경우, 다시 말해 시복시성 절차에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세 번째 경우이며, 순교와 영웅적 덕행이라는 전통적인 다른 두 가지와 구별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즉각 대두되는 문제는, 어떤 하느님의 종을 시복하기 위해 유효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기준들이 있습니까?

교황께서 제시하는 기준은 다섯 가지입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제가 보기엔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명으로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내어 놓고, 확실한 죽음을 ‘쁘롭떼르 까리따뗌’(propter caritatem), 곧 ‘사랑 때문에’ – 이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 영웅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기준은 단기간에, 그리고 목숨을 바치는 것과 때이른 죽음 사이에 연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바친 경우라도, 시복이나 시성을 위해서는 어쨌거나 기적이 요구됩니까?

그렇습니다. 시복을 위해서도, 그 후 시성을 위해서도 기적은 필요합니다. 또 당연히 기적은 하느님의 종이 죽은 후에, 그리고 그의 드러난 전구로 일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목숨을 바치는 일이 일어날 수 있는 사례를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교황의 이러한 선택은 교회법적 소송과정에서 몇 차례 어려움을 겪었던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이를테면 순교에 관한 소송으로 시작했는데, 무척이나 다양한 영웅적 덕행들에 관한 소송으로 건너가야 했던 것이지요. 사실 이 사람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지, 다른 경우에 해당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곧, 어떤 영웅적인 덕행과 덕행들에 해당하는지, 순교에 해당하는지 잘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예컨대 모두가 알고 있는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하느님의 종 살보 다퀴스토(Salvo D’Acquisto)의 경우가 있습니다. 또 영웅적인 덕행과 덕행들로 시복되었다가 이후에는 순교로 시성된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의 사례를 들 수 있습니다. 소송을 진행하는 데 곤란한 점이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는 이 세 번째 길이 모호한 여러 경우들을 해결하도록 도와줍니다. 예컨대 순교의 경우에 전제되는 것들, 곧 박해자가 있을 필요가 없으며, 신앙에 대한 증오(odium fidei)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고, 무엇보다도 피 흘림(effusio sanguinis)도 필요 없습니다. 그대신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과 때이른 죽음, 하느님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받아들인 죽음 사이에 깊은 연결을 보여 주는 것으로 충분하며, 이것이 본질적입니다. 예컨대 누군가 병든 사람들을 구하면서, 곧 이웃의 선익을 위해 자기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면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죽음의 몇 가지 경우에 이를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