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승천 대축일 특집] 강선남 박사의 성경 안에서 보는 성모 마리아

루카복음은 성모님 관점에서 예수 탄생 예고 들려주고
요한복음은 제자들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로 부각시켜



가톨릭교회 교리가 개신교와 일치하지 않는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는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그분에 대한 우리의 공경심의 진원지 혹은 출발점을 찾아보는 일은 의미 있겠습니다.

“행복하십니다, 믿으신 분”

복음서 가운데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에 관해 들려주는 곳은 마태오복음(1-2장)과 루카복음(1-2장)입니다. 마르코와 요한복음은 예수의 공생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루카 복음은 마태오와 달리 요셉이 아니라 마리아의 관점에서 예수의 탄생 과정을 들려주고, 예수의 유년시절의 일화도 하나 소개해 주며 마리아에 대한 보다 풍성한 자료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루카복음에서 마리아에 대한 첫 번째 언급은 예수의 탄생 예고입니다(1,26-38).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전해들은 마리아는, 처음에는 당황하지만 곧바로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합니다(루카 1,38). 그리고 이어지는 루카복음의 다른 세 본문(1,39-56 2,22-40 2,41-52)은 메시아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줍니다. 예수를 잉태한 뒤 자기를 방문한 마리아를 보고, 엘리사벳은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1,44), 그리고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5)이라고 하여 예언자적인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님’은 메시아를 가리키고, ‘믿으신 분’은 마리아로서, 그는 하느님이 하시려는 일을 믿었고, 그러한 그의 신앙은 메시아의 어머니로 선택되는 데 부족함이 없음을 말해 줍니다.

이어서 예수의 유년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성전을 중심으로 전해집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주님께 봉헌하기 위해 성전으로 갔을 때, 시메온과 한나는 예수를 보고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시메온은 예수가 이스라엘에서 반대되는 표징이 되리라고 하면서(2,34), 마리아에게 그의 ‘영혼이 칼에 꿰찔릴 것’(2,35)이라고 예언합니다. 여기에서 ‘칼’은 예수의 공생활로 인해 마리아가 겪게 될 고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가족들이 공생활 초기에 그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는 기록이나(마르 3,31-35), 예수 스스로 당신이 세상에 칼을 주러 오셨다고 하신 말씀(마태 10,34-36)과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메온의 이러한 예고는 열두 살 난 예수가 부모와 떨어져서 성전에 머물며 당신을 드러낸 사건에서 실현됩니다(2,41-52). 예수는 하느님을 당시 아버지라고 말하면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2,49).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마땅히 가야할 길을 가야 했고, 이것이 어머니 마리아가 힘겹게 감당해야 했던 일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우리는 수태고지에서 그러했듯이 신앙인으로서 마리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한 목자들이 전한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새겼듯이(루카 2,19), 당신 아들에 대해 계시되는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고대하면서 이번에도 그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습니다(2,52).

이처럼 예수의 탄생과 유년시절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믿음, 그리고 자기와 예수에게 일어난 일을 숙고하는 여인으로 나오고 있지만, 예수의 공생활 기간 동안에는 가족들과 함께 잠깐 언급되는 경우(마태 12,46-50 13,55 마르 3,31-35 루카 8,19-20)외에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카나의 혼인잔치에서(요한 2,1-11) 마리아는 예수의 첫 번째 표징의 도구이며 신앙인으로서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보고 아드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어머니 마리아에게, 예수는 아직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여인이여, 저에게 무엇을 바라십니까?”(2,4)라고 말합니다. 예수의 이러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잔치 일꾼들에게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2,5)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 백성의 필요를 위해 예수님께 전구하는 중재자로서, 그리고 당신 아드님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리아의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한편 공관복음서는 십자가에서의 예수의 마지막 순간에 마리아가 어디에 있었는지 말해주지 않습니다. 다만 요한만이 우리에게 예수와 마리아의 마지막 순간을 전해줍니다(요한 19,25-27).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당신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십니다. ‘예수의 어머니’에서(19,25) 단순히 ‘어머니’로 소개되는 마리아는(19,26) 제자의 어머니가 되어야 하고(19,27) 제자는 그의 아들이 될 것입니다. 이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제자들의 어머니로서 그들과 함께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진술과 더불어 마리아와 교회의 관계는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에서도 나타납니다. 성령에 의한 예수의 수태 고지와 예수가 승천하기 전에 성령에 의한 교회의 형성을 선언한 본문을 비교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수태 고지에서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루카 1,35)라고 말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활한 예수는 하늘로 올라가기 전에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두 구절에 같은 단어들(‘내려오다’, ‘힘’)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고, 두 구절은 서로 긴밀하게 상응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교회를 탄생시킨 ‘오순절(성령강림)’을 경험하기 이전에 마리아는 개인적으로 ‘오순절’을 경험했음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물리적인 수용에 의해, 다른 하나는 그분에 대한 증언에 의해 세상에 그리스도를 오게 하였으며, 첫 번째 것은 두 번째의 ‘예형(type)’이 됩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하느님께 ‘예’라고 대답하는 하느님의 백성이며, 온 교회의 전형이 되는 하느님 백성을 대표합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마지막 모습은 예수의 부활과 승천 이후,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모여 성령이 오기를 기다리며 기도하는 장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사도 1,14). 그렇지만 우리는 그 이후의 마리아의 삶에 대해서는 알 수 없습니다. 초기 교회는 마리아의 그 이후의 행적에 대해 몇 가지 전통을 제시합니다. 어떤 전통은 마리아가 사도 요한과 함께 에페소를 여행하였다고 하고, 다른 전통은 그가 예루살렘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그의 최후에 대해서도 자연적인 수명을 다하고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에, 자연사가 아니라는 전승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경우 모두, 마리아의 육신이 하늘로 들어 올리어졌다는 데에서는 일치합니다. 고대 그리스도교 전통은 마리아의 유해에 관련해 아무런 이야기가 없고 그의 무덤 위치도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같은 전승을 인정합니다.



교회는 천상 예루살렘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영광을 받은 하느님의 어린양의 신부인 여인-교회를 보면서(묵시 21,1-22,5), 성자에 의해 천상영광으로 들어 높여진 마리아의 모습과 연관 짓습니다. 그리하여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사도헌장’에서 마리아가 승천했음을 가톨릭의 가르침으로 공식 선포하였고, 교회는 8월 15일을 성모 마리아의 승천을 기념하는 축일로 경축합니다.



강선남(헬레나) 박사는 로마 성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신학(신약학 전공)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강대학교와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강선남(헬레나)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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